선과 악의 선택은 결국 인간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블랙 먼데이를 맞아 먼저 신을 버리고 악에 손을 내민 것은 존이었고 파멸에 치달으면서도 끝까지 신의 이름에서 구원을 얻은 것은 그레첸. 생각해보면 굉장히 간단하고 명료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장면을 쪼개고, 그 사이에 있는 수 많은 상징들이 정작 중요한 부분을 가리고 있는 걸까.
그의 이름은 중요치 않아. 그를 불러서 행복하다면.
결국 존에게는 그레첸이, 그레첸에게는 존이 신이었는가보다. 신이 그레첸의 앞에 나타났을 때 존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도 존을 구원한 것은 그레첸이라는 것도. 어쩌면 신은 그레첸을 구원하고 끝내려 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 순간에도 존을 걱정하고 그의 구원을 빌고 있었던 그레첸의 뜻에 따라 존에게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준 것 같았다. 자신이 저지른 악행들, 그레첸에 대한 폭력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계약을 끝낼 방법을 알려주고 그의 눈 앞에서 그레첸의 죽음을 보여주는 것. 결국 자신을 버려서라도 그레첸을 돌려받는 것을 선택하게끔. 그래서 예전처럼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첫 관람 때부터 어쩐지 그레첸에 대한 극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리고 그게 이어져 내 해석이 완성되어 기록용.
X_박영수, 존_송용진, 그레첸_차지연 중심으로
처음부터 시험의 대상은 그레첸이었다. 존에게 닥쳐진 시험은 굳이 꼽아보자면 블랙먼데이? 그러나 알다시피 블랙먼데이는 개인적인 시험이라기보다 사회 전반에 내려진 것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의 직업 상 더 크게 연관되어 있기에 시험이라 본다면 존은 이미 '죽어버린 이여'를 통해 그 시험에서 X를 선택했다. X가 유혹을 한 것이 아니라 존이 먼저 손을 내밀었고 X는 그에게 답했을 뿐이었다.
X의 손을 잡은 후 존은 승승장구해가지만 그레첸은 알 수 없는 폭력과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장면으로 드러나는 폭력씬은 세 번 뿐이었으나 그 기간동안 얼마나 많은 폭력이 있었을까. 작은 소리에도 놀라고 잘 때조차 맘편히 눕지 못하고 웅크려 있을만큼 이미 폭력은 일상이 되어버린것일게다. 그렇게 온 몸과 정신이 망신창이가 되어가는 중에도 그레첸은 존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믿음으로 버텨간다.
폭력과 억압에 시달리던 이의 눈을 보면 마치 죽은 것 같다는 말이 있다. 단 한 조각의 희망도 없을 때 육체는 살아있을지언정 정신이 죽었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레첸에게는 '지옥의 씨앗'이 그 순간이었을게다. 끝까지 붙들고 있던 존에 대한 사랑과 믿음에도 결국 존이 떠나버리고 더 이상의 희망도 남지 않았다고 보여질 때. -첫 문장에서 말했던 의미의 죽었다는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그 시점에서 그레첸은 죽었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 육체적으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잠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첸은 여전히 믿음과 희망을 놓치 않는다.
그렇게 그레첸은 시험을 거쳤고, The song of songs에서 시험에 통과한 그레첸이 신의 품 속에서 구원을 받을거라... 생각했으나 그레첸에게 존은 또 하나의 신이었으니 그런 그레첸의 진정한 구원-존의 품에서 행복하기를-을 위해서 존은 자신의 신-그레첸-을 다시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X에게 눈이 가려져 보지 못했던 그 동안 자신의 죄악을 깨닫게 하고 결국엔 그 죄악의 씨앗을 그레첸의 손으로 매듭짓는 모습을 보여주어 죄악의 대가를 알려주기까지. 존이 눈을 떠 다시 그의 손을 잡기까지 화이트X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데 존의 악마성(동일인)이 블랙 X라고 보는 입장에서 '악몽' 후부터 '피와 살'까지의 블랙X는 존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화이트X의 보여주기 식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 속의 악과 대면한 존은 스스로를 죽여 악을 죽이고 다시 자신의 신-그레첸-의 품 속에서 구원을 받는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품 속에서 영원한 행복을 얻는다.
메피스토
파우스트 이야기를 다루면서 메피스토를 전면에 다룬 건.. 그래 신선했다고 치자. 그 설정대로 극은 전미도의 메피스토가 되었는데 아무리 원작이 그렇다해도 포커스를 다 맞춘 상황에서 뺏어가버리면 내 상실감은 도대체 뭐로 채우나. 와 정말 내가 메피스토가 된 줄 알았어. 니가 신이면 다냐.
취향과 부합하지는 않았지만 죽달에서부터 이어진 서-한 콤비의 공연은 취향을 제껴두더라도 한 번씩은 꼭 보자싶을만큼 짜임도 좋고 신선했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걸까. 분명 오이디푸스까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안그래도 인력풀 좋은 공연 바닥에 또 한 페어를 이렇게 버리게 되나.
- 더 데빌을 쓰다보니 시간은 좀 많이 지났지만 묶어버리게 된 메피스토.
파우스트가 좋은건 알겠는데 섣불리 건들였다간 위험하지 말입니다.
- 분명 메피스토 보고 열받아서 파우스트를 질렀는데 왜 아직도 책장에 장식만 되어있는가..